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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바 롯데 마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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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일본프로야구 퍼시픽리그의 프로야구단. 연고지는 치바현 치바시. 모기업은 롯데그룹이다.[14]
대한민국의 프로야구단인 롯데 자이언츠와 한 형제로, 구단주도 창업주 신격호로 같았다.[15] 하지만 구단주가 야구단만 챙길 수는 없으니 구단주 대행을 신격호의 차남 신동빈 씨가 맡고 있었는데, 현재 신동빈은 신격호 창업주의 별세로 한국 롯데를 이을 후계자가 된 상황이라서 부자가 쌍으로 구단에 손을 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문제다.[16][17] 이 때문에 하단에 "구단 내부도 더러운 권력싸움"으로 시작되는 내용이 있을 정도이다. 왕자의 난이 일어나고 신격호와 신동빈의 사이가 벌어진 지금은 야구단의 책임소재가 더욱 더 애매해진 상황이다. 신동빈 한국 롯데 회장은 2018년 2월 23일 치바 롯데의 이사직을 제외한 치바 롯데의 지위에서 물러났다. 롯데 자이언츠의 형제팀이라는 사실 때문에,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에서는 마린즈를 '본캐', 자이언츠를 '부캐'라고 칭한다.
대한민국에서는 국립국어원 표준 표기법 때문에 '지'바 롯데 마린즈라고 표기하고 있다. 또한 일본 프로야구팀의 지역명 표기를 잘 안하는 한국 언론[18] 에서도 이 팀과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는 지역명을 잘 말해주고 있다. 혹시라도 롯데 자이언츠와 헷갈릴까봐 구분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매년 비시즌 기간에 롯데 자이언츠와 치바 롯데가 연습경기를 치렀다는 기사가 심심찮게 언론에 보도되는데, 기사 표제에 롯데 자이언츠는 그냥 '롯데', 치바 롯데 마린즈는 '치바 롯데'라고 약칭을 표기하기도 한다(예1, 예2 등이 있다).
중국어 표기는 롯데그룹과 다르다. 일반적으로 롯데그룹의 롯데는 樂天(乐天)으로 쓰고 있지만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때문에(라쿠텐이 한자로 樂天[19] ) 혼동을 피하고자 羅德(罗德)[20][21] 로 표기한다. 참고로 중화권에서는 한국의 롯데 자이언츠도 치바 롯데처럼 羅德(罗德)으로 강제 개명하는 경우가 있다.[22]
물론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가 창단되기 전에는 치바 롯데 마린즈를 樂天(乐天)으로 표기했었고, 현재도 중국어권에서 종종 쓰이는 듯하다. 중화권에서는 예전 중국어 표기대로라면 롯데그룹이 같은 이름(樂天)을 가진 프로야구단을 무려 네 개(한국에 1개, 일본에 2개, 대만에 1개)를 거느리고 있다고 착각하기 쉽고, 바꾼 표기대로라면 치바 롯데는 다른 기업 산하의 구단이며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라쿠텐 몽키스, 그리고 롯데 자이언츠가 롯데그룹 산하의 형제 구단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다른 팀 팬들이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깔 때 흔히 ‘롯데노 파쿠리(ロッテのパクリ, 뜻은 롯데 베낀거)’라고 하는데 이 롯데가 치바 롯데 마린즈다.
2. 구단 역사 및 시즌별 성적[편집]
자세한 내용은 치바 롯데 마린즈/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홈구장 - ZOZO마린 스타디움[편집]
자세한 내용은 치바 마린 스타디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여담으로 일본프로야구 12팀 중 유일하게 고정적으로 가지고 있는 제2홈구장이 없다. 2020년 기준 토야마와 미토에서 경기를 치르는데 토야마의 경우는 여러 구단이 돌아가면서 경기를 하는 구장이라 제2홈구장이라 할 수 없고, 미토는 해당 구장에서 28년 만에 프로야구 경기가 열린 것이고[23] , 롯데가 이바라키에서 경기를 한 것이 61년 만이기 때문에 롯데가 앞으로 매년 꾸준히 경기를 여는 것이 아닌 이상 제2홈구장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듯. 그나마 코로나 19로 인해 토야마와 미토 경기가 모두 취소되면서 말짱 꽝이 됐다.
예전에는 이시카와현립구장에서 25년간[24] 꾸준히 롯데 홈경기를 해 왔으나 2005년 이후로는 주최하지 않고 있다.
4. 마스코트[편집]
롯데 자이언츠 마스코트도 로고랑 이름만 바꾼 해당 마스코트를 쓰고 있다. 프런트가 해명하기를 먼 친척이라고.
한국 사람들이 롯데 구단 마스코트를 보고 오리+갈매기라고 해서 오갈이라고 하듯, 일본에서도 오갈이 비슷하게 취급하고 있다. 이 이유 때문에 2021년 hololive와 퍼시픽 리그가 콜라보레이션을 할 때 오리로 유명한 오오조라 스바루가 마린즈 타이업 버튜버 중 한 명으로 지정되었다.[25]
참고로 마 군, 린 짱, 즈 짱의 앞글자를 따면 마린즈가 된다.
한편으로 2017년 가마우지 마스코트 쿨이 은퇴했고, 2021년에는 그 문제의 삼단변신 초롱아귀 마스코트 나조 노 사카나도 은퇴했기에 2023년 현재 치바 롯데 마린즈의 마스코트는 마린즈 3인조이다.
5. 서포터즈[편집]
가와사키 시대와 마린 스타디움 시대를 나누는 또 한 가지 특징은 바로 팬들의 성향. 가와사키 시대는 팬들이 적었기에 큰 문제가 없었지만, 마린 스타디움으로 넘어오면서 열성팬들이 늘어남과 동시에 매너는 최악으로 변하게 된다. 롯데 팬은 그 수에 비해 결속력이 강하다는 인상이 있고 2000년대 초반에는 구장에서 쓰레기를 솔선수범해 줍는 등 좋은 매너로 지역에서 표창을 받기까지 했다고 한다. 반면 이러한 결속력은 (주로 상대 팀에 대해) 부정적인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일반적으로 매너 나쁜 팬이라고 하면 한신이나 주니치를 먼저 떠올리지만, 한신, 주니치는 롯데보다 팬 수가 많아서 눈에 띄는 것이고 찌질함과 패악질의 순도에 있어서는 롯데를 따라갈 수가 없다고 한다.
롯데의 악질적인 팬의 특징은 대부분이 마린 스타디움 시대와 함께한 2, 30대라는 데 있다. 한신의 경우 대부분이 술 취한 아저씨라는 이미지이지만, 롯데의 경우는 잘 결집된 유럽축구나 J리그의 훌리건에 가깝다. 특히 지바 팬덤이 생겨나게 된 1990년대 초중반이 J리그 창설 초기로 울트라 닛폰을 위시한 축구 서포터 그룹이 성장하던 시기이기도 해서, 다른 팀[27] 의 응원이 트럼펫, 플라스틱 메가폰/배트 등으로 이루어지는 '전통적인' 일본 야구의 응원인 데 반해 마린즈 팬들은 축구, 그중에서도 J리그 서포터들에게 깊게 영향을 준 이탈리아의 '울트라스'식의 응원문화를 적극적으로 차용하였다. 이들은 응원 단장이 아니라 콜리더가 확성기를 들고 응원을 지휘하고, 플라스틱 메가폰/배트 대신에 박수를 이용하고, 응원가 자체도 일본 야구 특유의 '4소절의 응원가 - 2소절의 응원 구호'로 이어지는 응원가가 아닌 축구의 응원가에 가까운 4소절 내지 8소절의 응원가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또한 다른 구단에서 '시야 방해' 라는 명목으로 터부시되는 개인 깃발과 게이트기(머리 위로 들어올리는 정사각형의 깃발) 등이 종종 이용되며[28] 반데이라(남미 축구 문화에서 파생된, 관중석을 세로로 길게 덮는 천)가 이용되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타 구단과는 응원 문화가 크게 다른 편.[29]
다만 2009년을 전후하면서 아래 서술할 구단 내부 권력 싸움(...)의 여파로 막장이 된 분위기에서 기존의 응원을 주도하던 외야 응원단[30][31] 이 강도높은 프런트 디스를 벌임과 함께, 타팀 팬들과 충돌을 빚는 등 폭주하는 일들이 벌어지며 결국 시즌 종료 뒤 해산하게 된다.[32] 그 뒤 응원단이 전면적으로 물갈이[33] 되었고, 기존의 응원가들이 대대적으로 교체되는 등의 홍역을 치루었다.[34] 2010년에 롯데가 극적으로 우승한 뒤로는 매너 문제는 상대적으로 잦아든 듯. 오히려 그 해 일본프로야구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인물을 뽑는 쇼리키 마쓰타로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하였다. 결국 같은 팀의 니시무라 노리후미 감독이 수상했지만, 좋은 지도력을 보인 감독이나 팀 리더급 선수가 주로 받는 상이니만큼 팬들이 후보로 거론되었다는 것부터가 이례적인 케이스라고.
어쨌든 일본 야구계에서도 열성적인 응원을 하는 것으로 (좋은 쪽이건 나쁜 쪽이건) 유명하다. 단, 현재 들어서는 바비 발렌타인이나 그 이전 시절보다 응원 포스나 열기가 많이 줄어들었다는 얘기가 롯데 팬덤내나 타 구단에서도 자주나온다. 2009년 니시오카 사건[35] 으로 무기한 출입금지 당하고 해체한뒤 현재 사회인 야구단 "도쿄 메츠"의 응원단, 후원자로 있는 MVP의 복귀를 바라는 롯데팬들도 있었지만[36] 2009년 니시오카 사건에 대해 MVP는 2017년 지금까지 사과 한번 없고 오히려 자신들이 그렇게 응원하던 팀과 연고지를 버리고 도쿄 메츠란 팀으로 가는 짓거리를 저지르니 거기에 대한 배신감도 겹쳐 그들을 거부하는 팬들도 많다. 여러모로 MVP는 일본 야구 응원 문화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지만 그만큼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집단.
2016년에는 MVP 응원가가 몇몇 부활해 후쿠우라와 사부로등 선수응원가와 스킨헤드러닝, 엘리제 등이 쓰였지만, 전반기가 끝날즈음해서 암묵적으로 쓰이지않다가 올스타 이후로 완전히 쓰이지 않게 되었다. 당시 공식적인 발표에서는 "응원만을 위해 야구장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라는 표현을 사용해 MVP의 잔당들과 모종의 사건이 있었음을 암시하며 옛날응원가를 다시 쓰지않게 되었다. 당시 대부분의 팬들이 스킨헤드러닝등 옛날 응원가를 다시 부르지 못하는것을 아쉬워 하긴 했지만, 대부분 이해한다는 반응을 보이며 수긍을 하였다. 이런 반응들로 보면 MVP가 아직도 팬들사이에서 좋은 이미지는 아닌듯하다.
또 대만 프로야구의 라미고 몽키스와 구단간 교류로 비시즌 경기를 치루는데 이 과정에서 치바 롯데 서포터즈의 응원 문화와 응원곡이 대만으로 전파되기도 하였다. 대표적으로 위의 영상에서 고시엔 구장에서 서포터들이 부르는 "We Are" 챈트의 경우 라미고 몽키스 역시 사용하고 있다.[37]
현재 서포터즈 이름은 Team 26. 특이한 점은 팬클럽이 6개의 등급으로 나뉜다는 것이다. 이 때 주니어 회원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어린이용이며 프리미엄 골드 회원은 연간 티켓을 사는 등의 소수에게만 허용되어 있으므로 일반인들에게는 사실상 골드, 레귤러, 캐주얼 레귤러, 마린즈 총 4개의 선택권이 존재한다. 이 중 골드 회원은 10만원이 넘는 돈을 내는 대신 기념품과 티켓을 많이 주며 이벤트와 티켓 판매에서 최우선권을 얻는다. 레귤러와 캐주얼 레귤러는 그냥 일반회원인데 캐주얼 레귤러는 기념품이 없는 대신에 만원이 싸다.[38] 마린즈는 무료회원이다. 물론 무료회원은 포인트가 쌓이는 것 빼고는 혜택이 전혀 없다. 사실상 거의 명예회원. 회원카드도 구장에서 직접 가입하지 않는 이상 안 나온다.
응원 열기는 옆 나라의 자매팀처럼 과격하고 엄청나지만, 인기 자체는 일본에서 꼴찌를 두고 오릭스 버팔로즈와 경쟁하는 수준(...). 2017년 기준 저 두 팀이 가장 인기있는 지역은 아예 없다.[40]
여담으로 입장권 예매가 매우 쉬운 편이지만 특정 경기에서의 화력은 인기팀 못지않다보니 이런 특정 경기에는 응원석 예매도 쉽지 않다. 팬클럽 선예매로 들어간 사람이 응원석을 못 가는 일도 일어난다![43] 보통 이런 특정 경기는 개막전이나 특별 행사[44] , 그리고 한신 코시엔 구장 원정, 마지막으로 제3구장 경기이다.[45][46] 물론 이런 경기도 내야석은 며칠 후에 천천히 매진되거나 아예 자리가 남는 수준이다. 단 예외도 있었다. 바로 후쿠우라 카즈야 은퇴 경기. 이날만큼은 팬클럽 선예매일에 사람들이 하도 많이 몰려 서버가 뻗어버리는 바람에(...) 응원석은 일단 팬클럽 선예매 때 서버가 뻗어버리는 와중에도 조금씩 조금씩 표가 나가서 다 팔려버렸고, 결국 구단 측에서 일반 예매 때 남은 소수의 자리는 선착순이 아니라 추첨 판매로 판다고 공지해버렸다. 비인기팀인데다가 일본시리즈도 거의 못 나가다 보니 이렇게 예매가 몰리는 일은 굉장히 드문 케이스.
6. 응원가[편집]
자세한 내용은 치바 롯데 마린즈/응원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 관중수 추이[편집]
관중수에서 양대리그 통틀어 꼴찌였지만 세대, 계층을 가리지 않는 적극적인 마케팅 끝에 2018년 마침내 오릭스를 제치는데 성공한다. 그래도 여전히 양대리그 중에서 라쿠텐, 세이부 등과 더불어 관중수 하위권에 속한다.
8. 팀 특징[편집]
원래 팀 컬러는 근성있는 플레이가 특징인 팀. 특히 9월 이후의 성적이 압도적으로 좋아서 가을의 롯데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그리고 잘 안 알려져 있지만 2004년 재개편 이전 NPB 12구단 중 가장 늦게 최하위를 한 팀이다. 1983년 창단 33년 만의 구단 사상 최초로 최하위를 찍었다(...).[48] 또 롯데 오리온즈 시대의 유일한 일본시리즈 우승을 달성한 1974년 이후[49] 단 한 번도 승률 1위에 오른 적 없다. 전후기리그 플옵 시절인 1977, 1980, 1981년 플옵진출 당시엔 승률 1위 달성에 실패했고, 현재까지 마지막 리그 우승인 2005년은 페넌트 승률이 2위였고, 2010년이야...
주니치 드래곤즈 감독이었던 오치아이 히로미츠가 이 팀에서 처음 선수생활을 시작하였으며, 도끼투구법(マサカリ投法)으로 유명한 '일요일의 남자' 무라타 쵸지, 일본프로야구의 선인(仙人) 에노모토 키하치, 미스터 롯데 아리토 미치요 등이 유명하다.
이 팀에서 활약하고 있는 유명 선수는 일본프로야구에서 몇 안되는 언더스로 투수인 와타나베 슌스케,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활약하기도 한 이구치 타다히토 등이 있으며, 이승엽도 2004~2005년에 선수생활을 했었다. 2010~2011 시즌에 김태균이 선수생활을 했다.
구단주가 한국계인지라 한국인 혹은 한국계 선수와 인연이 각별한 구단이다. 장훈 옹의 선수생활 마지막 팀이자 일본프로야구 유일무이의 통산 3000안타를 기록한 팀이었고, 백인천도 일본 시절 말년 이 팀에서 몇년간 뛰었다. 카네다 마사이치는 이 팀 감독으로, 동생 카네다 토메히로는 에이스 투수로 1974년 팀의 일본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또한, 롯데에서 18년 간 뛰며 1970년대 강타선을 이끌었던 '미스터 롯데' 아리토 미치요(본명 김유세), 현역으로는 니시오카 츠요시 등이 이 구단을 빛낸 한국계 선수. 응원단도 한국에서 레이지본 등에서 밴드 활동을 한 진 토시오씨가 오랜 기간 응원단장을 맡으면서 한국 노래를 많이 사용했는데, 2005년의 경우 이승엽을 포함한 주전라인업 선수 중 4명이 한국노래를 응원가로 썼을정도. 직접 들어보자. 이마에, 후쿠우라, 이승엽, 사토자키의 응원에 주목할 것. 후쿠우라 응원가 전에 부르는 히트콜도 두산의 응원과 흡사하다.[50] 노라조의 해피송도 자주 쓰이는 응원가 중 하나다. 2010년을 전후한 대부분 응원가들의 원곡이 정리되어 있는 페이지. 그리고 2014-15 오프시즌 때 마이너리그에서 활약하던 이대은을 영입하여 한국선수와의 인연을 잇고 있다.
2010년 시즌, 동방 프로젝트의 BGM인 U.N. 오웬은 그녀인가?가 응원곡으로 등장했다. 충공깽.
롯데는 1992년에 이름과 연고지가 바뀌면서 여러가지 의미에서 큰 변화를 맞게 된다[51] .(오리온즈, 마린즈로 나누기보다는 구장 이름으로 나누는게 일반적) 가와사키 구장 시대에는 비교적 깨끗한 이미지의 팀이었...다라기보다는 워낙 인기가 없어서 아무도 신경을 안 썼기 때문에 딱히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었다고 보는 편이었다. 오히려 부진한 성적과 얌전한 선수들보다는 퇴장을 일삼는 감독이나, 한산한 구장에서 마작을 친다던가, 나가시소멘을 먹는다던가(...)[52][53] 는 등 기행을 일삼던 관중들 때문에 여러모로 특이한 의미로서나 주목을 받는 팀이었다가, 치바로 연고이전 하면서부터 더러운 이미지로 가득찬 구단이 되어버렸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는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제기된 약물문제가 있다. 당시 롯데 선수들이 암페타민계열의 약물인 그리니(통칭:환경운동가)를 복용했다고 주간 아사히가 기사를 냈고 구단은 반박은 했으나 끝내 고소는 하지 않아, 뒤가 구려서 그렇다는 말이 많았다. 실제로 2006년에 오릭스, 요미우리 출신의 노무라 타카히토가 약물소지로 걸리면서 증언한 덕분에 팬들도 거의 사실로 인정하는 분위기.[54] 이게 큰 스캔들로 번지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가 있는데, 마침 비슷한 시기에 터져나온 다이에의 사인 훔치기(그것도 팬까지 한패가 된...)덕분에 물타기되었고, 어차피 그 기간 동안 위에서 서술했듯 팀 성적은 개판이었기에 다른 팀 팬들도 크게 문제삼지는 않았다.(...)
약물 이외에도 12개 구단 중 가장 더티한 플레이로도 유명했다. 2009년 4월 세이부전에서 하야카와 다이스케가 포수를 향해 배트를 던진 악질적인 플레이는 많은 지탄을 받았다.[55] 이 외에도 볼 숨기기나 2006년에 이승엽의 홈런을 날려먹은 주루플레이 어필, 글러브 집어던지기[56] , 스파이크 날 세우기, 상대팀 포수 메치기[57] 등 주옥같은 플레이가 많다.
여담으로는 '도시락의 저주'가 있다(...). 팀에서 선수들의 이름을 딴 도시락을 만들면 해당 선수의 선수생명이 꼬인다는 저주이다.
2013년, 가까운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와 사이타마 vs 치바 라이벌 시리즈를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두 팀은 원래 서로 발목 잡는 구단으로 라이벌 역사가 깊은 편이다. 고춧가루 부대 때가 딱 세이부 황금기다 보니 아무리 세이부가 최강자라 해도 '롯데를 죽여야 결승 간다'는 이미지가 각인되었다. 황금기가 끝나도, 6강 클라이맥스 시리즈엔 사이타마 세이부와 치바 롯데가 세트로 올라갔다 떨어졌다 하고 있다. 오죽하면 치바 롯데 응원가 중에 세이부를 이기자고 하는 응원가가 있을 정도다.
세이부가 라이벌로 인지도가 있지만 라쿠텐과도 무시못할 라이벌리를 형성하고 있다. 롯데가 미야기 구장을 홈으로 쓰던 시절 센다이 팬들의 응원을 업고 일본시리즈를 우승한 적 있는데 응원해준 센다이 팬들을 내다버리다시피한 행보를 보이며 센다이의 야구팬들은 롯데에 대한 정이 완전이 없어지고 롯데 안티로 돌아섰다. 그리고 그들이 상당수 라쿠텐 팬으로 흡수되면서 자연스레 라이벌리 형성. 게다가 라쿠텐에게 창단 첫 시즌부터 26:0이라는 라쿠텐에게 안겨줘서 더더욱.
센트럴리그와의 교류전을 맞이해서 구단에서
나루세 요시히사의 FA 보상선수로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마스코트를 지명했다.
그리고 센트럴리그의 한신 타이거스와 함께 일본시리즈 우승을 홈구장에서 맛본 적이 1번도 없다.
참고로 주니치를 제외하면[62] , 4번 다 동일본팀이 아닌 상대로 이겼다. 50년에는 쇼치쿠 (교토), 74년과 2010년에는 주니치(나고야), 2005년에 한신(니시노미야). 웃긴건 반대로 동일본팀을 상대한 일본시리즈는 패배했다는 점이 있다.[63] . 일단 롯데는 현재 홈구장인 치바 마린 스타디움에서 일본시리즈 우승 확정팀을 배출해낸 적이 없다.
홈런타자와 유난히 인연이 없는 팀이기도 하다. 홈구장에 홈런 라군을 세우기 전 삼성 소속으로 마지막으로 한 시즌 30홈런을 때린 타자는 2005년의 이승엽이었으며[64] , 일본인 30홈런 타자는 1986년의 오치아이 히로미츠를 마지막으로 30년이 넘도록 단 한 명도 배출한 적이 없다. 마이니치-다이마이 시절까지 합쳐, 팀 역사를 통틀어 일본인 30홈런 타자는 벳토 카오루. 야마우치 카즈히로, 오치아이 히로미츠 단 3명뿐이다. 일본인 좌타자 한 시즌 최다 홈런은 2008년 오마츠 쇼이츠가 기록한 24홈런(...)에 불과하다. 소프트뱅크로 이적하자마자 홈런왕이 된 알프레도 데스파이네의 사례를 볼 때 역풍이 불고 파울그라운드가 드넓은 홈구장 마린 스타디움의 환경이나, 희소한 파워히터를 사들이거나 오래 붙잡기 어려운 스몰마켓 팀이라는 약점이 뼈아픈 부분. 그러나 1군 거포와는 인연이 없는 대신 아오마츠 케이요, 코베 타쿠미, 이노우에 세이야, 키요타 이쿠히로[65] 같은 2군 본즈들은 줄기차게 배출한 것을 보면 육성 환경에도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심지어 팀 홈런 1위는 롯데 오리온즈 초창기인 1971년(...)을 마지막으로 48년 동안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극악의 홈런 때문에 10홈런만 칠 수 있어도 클린업에 들어갈 수 있다(...). 다음은 마지막 30홈런 타자가 등장한 2005년부터 다시 나타난 2019년까지의 치바 롯데의 선수별 홈런 기록이다.
참고로 이 13년 동안의 팀내 1위 홈런타자의 홈런 갯수의 평균을 내 보면 반올림해서 19개이다. 좀 더 자세히 들어가면 공인구가 바뀌기 전에는 반올림해서 22홈런, 바뀐 이후에는 17홈런. 일본인 타자로만 한정하면 13년 전체 평균 15홈런, 공인구 바뀌기 전에는 18홈런, 바뀐 이후에는 12홈런(...).
2018시즌 현재는 대타 위주로 나오면서 100타수도 못 나오고 7홈런을 친 맷 도밍게스와 시즌이 45%정도 지난 상황에서 56경기 10홈런을 친 이노우에 세이야 정도는 20홈런에 도전해 볼 만 하다. 특히 프로 첫 두자릿수 홈런을 기록한 이노우에가 20홈런을 달성한다면 5년만에 등장한 토종 20홈런 타자이자 공인구 변경 이후 2번째로 20홈런을 친 토종 타자가 된다. 결국 도밍게스는 팀에서 기회를 거의 주지 않는 바람에 7홈런에서 더이상 홈런을 추가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노우에는 9월 8일 시즌 20호 홈런을 치면서 5년만에 롯데에 토종 20홈런 타자가 등장했다. 그리고 이노우에는 2019년 8월 22일 시즌 20호 홈런을 치면서 2년 연속 20홈런을 넘겼다. 이 기록은 1990년대 후반(...)에 하츠시바 키요시가 기록한 이후 거의 20년만이라고...
2019년에는 두 자릿수 홈런을 친 타자가 6명이고 30홈런 타자가 14년만에 나왔지만 펜스를 당긴 것 때문에 피홈런도 퍼시픽리그 1위를 찍어버렸다(...).
여담으로 일본프로야구 구단중에서 팬 서비스가 가장 좋기로 유명한 구단이라 한다. 그 이유는 팬 서비스가 연봉고과에 반영되기 때문. 비슷한 예로 도호쿠 라쿠텐 이글스도 재계약시 팬 서비스를 어느 정도 참조한다고 하긴 하지만 치바 롯데는... 물론 팬 서비스만 좋다고 연봉을 올려주는 것은 아니고 프로답게 성적에 플러스로 팬 서비스 현황을 보아 좀더 줄지 말지를 정한다고 한다.
2020년 현재도 파워히터 문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용병타자 브랜든 레어드와 레오니스 마틴, 국내 선수는 이노우에 세이야 한 명에게 의존하는 상황. 그나마도 레어드는 부상으로 시즌의 대부분을 날렸고 이노우에는 후반기에 극심한 부진에 빠지면서 15홈런도 치지 못했다. 유일하게 20홈런을 넘긴 마틴도 시즌을 2주 정도 남겨두고 시즌아웃. 또한 작년에 17홈런을 친 나카무라 쇼고는 컨택에 집중한 것인지 홈런이 반토막이 났고, 2017년 1라운더인 거포 유망주 야스다 히사노리는 풀 시즌을 뛰면서 겨우 6홈런 쳤다(...). 결국 오늘도 롯데의 타격코치들은 까이는 상황. 다만 롯데의 투수코치 쪽은 1군 코치인 요시이 마사토는 그렇게 좋은 평을 못 듣지만[81] , 2군 투수코치인 카와고에 히데타카[82] , 오노 신고, 오토나리 켄지는 고졸 하위픽 투수들이 연이어 터지면서 호평을 받고 있다.[83]
2010년대 들어서는 국가대표랑도 인연이 많이 없는 편. 2017년 WBC 대표로 이시카와 아유무가 선정된 이후 올림픽/WBC/프리미어 대표가 6년간 안 나오다가[84] 2023년 WBC에서 사사키 로키가 승선하면서 드디어 오랜만에 국대를 배출해냈다. 그러나 야수의 경우 2013년 WBC에 발탁된 카쿠나카 카츠야가 마지막 롯데 소속 국대 승선자이다.
8.1. 구단 안팎의 권력 다툼[편집]
구단 내부의 권력싸움 역시 유명하다. 구단의 보스인 신동빈이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지라 사장인 세토야마 류조[85] 를 중심으로 한 수뇌파와, 감독인 바비 발렌타인을 중심으로 한 현장파의 대립이 심하였다. 상술됐듯 발렌타인 1차 취임기(1995) 때 단장인 히로오카 타츠로와 파워게임을 벌이고 모양새 안 좋게 떠난 바 있는데, 이후 2차 취임기(2004~2009) 후반기 즈음에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되고야 말았다. 2008년 신인드래프트에서 발렌타인이 초노 히사요시를 강행지명한 것[86] 을 계기로 그동안 쌓여있던 수뇌파의 불만이 폭발, 주간지에 발렌타인의 비리[87] 를 죄다 까발리면서 발렌타인이 2009년까지만 감독직을 맡게 되면서 사태는 끝을 맺었다.[88] 그리고 이 사실을 메이저리그 팬덤에서도 알고 있는지 2012 시즌을 앞두고 봑빠들이 발렌타인이 건수 하나 터뜨려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89]
2015년 이후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으로 신격호 명예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매각설이 여기저기서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성적이나 흥행이 그다지 좋은 것도 아니고, 수 년간 적자를 떠안아온 구단이지만 신격호 회장의 야구에 대한 의지가 워낙 확고해서 계속 유지해왔는데 신격호가 왕자의 난으로 물러나면서 야구단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것. 아예 익명의 일본 재계 관계자를 인용해 신격호 본인의 야구단 유지에 대한 의지가 왕자의 난을 부른 지배구조의 취약성의 원인이었다는 논조의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단 2016년 말 롯데그룹 비자금 조성 의혹 사건 이후에는 신동빈 회장이 매각설을 부인했다는 기사도 나왔다.#
9. 선수단[편집]
자세한 내용은 치바 롯데 마린즈/선수단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0. 역대 선수[편집]
자세한 내용은 치바 롯데 마린즈/역대 선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